늦은 밤, 또 치킨을 시켰던 날의 후회

 


배가 고픈 게 아니라 허전했던 거였어요

진짜 이상했어요. 저녁을 분명히 먹었는데, 밤 11시만 되면 배가 고픈 거예요. 처음엔 그냥 소화가 빨라서 그런가 했어요. 근데 잘 생각해보면 그게 배고픈 게 아니었어요. 뭔가 허전한 느낌?

회사에서 하루 종일 지치고, 퇴근하면 이미 피곤한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뭔가 먹고 싶어지더라고요. 그냥 간단하게 뭐라도. 그러다 편의점 들러서 컵라면 사고, 과자 사고, 아니면 배달 앱 켜고 자꾸 내려보다가 결국 치킨 시키고. 시키고 나면 그제야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데, 막상 다 먹고 나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후회감. 아 또 이랬네, 괜히 먹었다. 그런데 그게 또 반복돼요. 너무 지겨울 만큼.

문제는 다음날이었어요. 속은 더부룩하고, 부은 얼굴에 뭔가 기운도 없고. 결국 그날 하루 컨디션까지 망치더라고요. 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. 단순한 식욕 문제가 아니라, 뭔가 내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 같았어요. 그래서 그때부터 진짜로 생각했어요. 내가 왜 밤마다 이렇게 먹게 되는 걸까. 이걸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.

배고픔이 아니라 감정이 문제였다는 걸 인정하기까지

하루를 돌아보면, 저녁 이후에 나한테 주는 보상이 ‘음식’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. 회사에서 눈치 보며 일하고, 집에 와서도 정리할 게 한가득인데, 그 와중에 가장 쉽게 나를 달래줄 수 있는 게 배달 음식이나 간식이었어요. 그러니까 습관처럼,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음식으로 해결한 거죠.

그리고 그 시간대가 문제였어요. 밤 11시 넘어서 TV를 틀어놓고 혼자 있으면, 괜히 마음이 허해지잖아요. 그때 손이 먼저 간 게 배달 앱이었어요. 기분은 뭔가 허한데, 할 수 있는 건 없고. 그냥 뭐라도 씹고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. 근데 결국 그건 임시방편이더라고요. 허전함은 그대로인데 배만 불러져 있는 상태.

그래서 이제는 감정이 허할 땐 ‘먹기’ 대신 다른 방법을 써보려고 해요. 예를 들면, 산책을 잠깐 나가거나, 조용히 음악을 틀고 앉아 있거나, 진짜 너무 뭘 먹고 싶으면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셔요. 처음엔 이게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, 한 번, 두 번 해보니까 의외로 ‘진짜 배고픈 상태’가 아니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. 배가 고팠던 게 아니라, 마음이 심심했던 거였어요.

저녁 루틴을 바꾸면 폭식이 줄어들더라고요

밤에 폭식이 오는 패턴을 곰곰이 보니까, 결국 ‘루틴’의 문제였어요. 저녁 식사 시간이 들쭉날쭉하거나, 아예 건너뛰는 날도 많았고요. 그런 날일수록 폭식 확률이 더 높았어요. 그래서 일단 기본부터 바꿨어요. 저녁은 무조건 챙겨 먹자. 그것도 제때.

가능하면 7시 이전에 간단하고 따뜻한 식사. 너무 과하지도, 너무 허전하지도 않게. 밥이든 국수든 국 하나 있는 집밥 느낌으로 먹어요. 그렇게 하면 몸이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고, 밤에 자꾸 뭔가를 찾지 않게 되더라고요.

그리고 자기 전 루틴도요. 예전엔 저녁 먹고 소파에 누워 폰만 보다 밤 11시에 “아 배고프다” 하면서 갑자기 뭐 시켰거든요. 근데 이제는 10시쯤 되면 불도 줄이고, 샤워하고, 조용한 음악 틀고 침대 쪽으로 몸을 유도해요. ‘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’라고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거죠. 몸이 편안해지면 이상하게 입도 덜 심심해져요.

이건 저한테 정말 컸어요. 루틴 하나 바꿨을 뿐인데, 밤마다 반복되던 폭식이 줄어들었어요. 마음이 조급하지 않으니까 음식에 덜 기대게 되고요. 결국 그 시간대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핵심이었어요.

배를 달래는 음식보다, 마음을 달래는 방법이 필요했어요

야식이 그렇게 끊기 어려운 이유가 단순히 맛 때문은 아니에요. 저는 그게 진짜 위로라고 생각했어요. 바삭한 튀김 소리, 매콤한 국물 한입, 달달한 디저트. 입안에서 그게 퍼질 때만큼은 하루의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느낌이었거든요.

근데 그게 지나고 나면 남는 건 늘 똑같은 감정이었어요. ‘왜 또 먹었지’, ‘아 내일 아침 얼굴 또 부을 텐데’, ‘진짜 의지 없다’. 그게 쌓이니까 자기혐오로 이어지고, 그러면 또 우울해지고, 결국 또 먹게 되고. 완전한 악순환이었어요.

그걸 끊기 위해선 ‘먹지 말자’가 아니라, ‘다르게 위로하자’였어요. 저는 자기 전에 글을 써요. 그냥 아무 말이나 써요. “오늘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”, “진짜 속상했던 일”, 또는 “그냥 아무 생각 안 들었던 하루” 뭐든지. 그렇게 감정을 풀어내고 나면,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요.

그리고 뜨거운 물에 몸 담그거나, 손목에 따뜻한 찜질팩 대는 것도 은근히 도움이 돼요. 물리적으로도 안정되는 느낌이 드니까, 이상하게 입도 덜 심심해져요. 결국 나를 먹이는 게 아니라, 다독이는 게 먼저더라고요.

늦은 밤, 나한테 제일 필요한 건 음식이 아니었어요

폭식이 줄어든 건 사실 ‘의지’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. 오히려 ‘이해’ 때문이었어요. 내가 왜 자꾸 그 시간에 먹고 싶어졌는지를 진짜로 들여다보니까, 거기엔 늘 감정이 숨어 있었어요. 억울함, 외로움, 지침, 인정받고 싶은 마음 같은 거요.

이걸 인정하고 나니까, 먹는 걸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덜 찾게 됐어요. 물론 지금도 가끔은 먹어요. 야식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니까요. 근데 차이는 있어요. 전처럼 무의식적으로 허겁지겁 먹는 게 아니라, 내가 진짜 원할 때, 소중하게 먹어요. 그리고 그게 끝나고 나면 후회도 덜 해요.

이제는 늦은 밤이 와도 불안하지 않아요. 뭐라도 시킬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아니라, 그냥 오늘 하루 잘 버틴 나를 조용히 다독이는 시간이에요.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, 손에 찬기 없는 컵 하나 들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아요.

결국 밤은 나를 시험하는 시간이 아니라,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. 늦은 밤의 허기, 그건 배가 아니라 마음이 보내는 신호였던 거예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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